동생이 갑자기 명품 가방을 사주겠다고 골라보라며 연락이 왔다.
정말 뜬금없어 이유를 물어보니, 직장에서 나의 또래 정도 되는 동료들이 '우리 정도 나이면, 명품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지' 하면서 명품 가방을 고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언니도 명품가방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지 않겠냐며 연락이 왔다.
나를 생각해주는 동생에게 고맙기도 했지만, 워낙 속세(?)와 동떨어진 내 동생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것에 대한 씁쓸함은 떨쳐내기 쉽지 않았다.
명품가방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할 '나이'는 언제인가요?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건가요? 명품가방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 나이?
명품을 소유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북함이 아니다. 명품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이야기들 그리고 철학을 동경하여 구매하는 그런 합리적인 가치소비는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명품, 숙련된 장인의 기술들과 역사를 거쳐오며 명성을 떨친 그런 이름 있는 브랜드의 상품들은 소유하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다.
개인의 소비 기준과 소비 습관은 아무도 왈가불가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이를 이유로 럭셔리 소비를 부추기는 이 만성적인 사회가 나는 영 피곤하고 불편하다. 인간의 과시 본능은 불가피 하지만, 필요가 아닌 소비는 여간 궁색하기 짝이 없다. 같은 나이대 필요와 소비패턴은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이에 맞는 소비의 타당성을 논할 수 있는 걸까.
소유가 주는 과시는 언제나 상대적이라 끊임없는 결핍을 야기한다. 그리고 결핍이 주는 열등감과 박탈감을 피하기 위해 또 우리는 다시 무의미한 경쟁에 뛰어들게 되지 않는지...? 소비는 감정이라고 한다. 감정과 불가분한 인간이 이 무한 반복의 고리를 끊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내 목표가 '명품 얼리어답터'가 되는 것이 아닌 이상, 이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의식적이 여야 하며 주도적이 여야 한다. 세상이 말하는 기준에 홀리지 말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찾아 줏대있게 지키며 살아야 한다.개인적이어야 할 수 도 있고 그래서 고독해질 수도 있다. 과시하는 본능을 물질적 허영심보다는 다른 것들로 환기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회가 "친절히" 나를 위해(!) 설정해주는 '나이에 맞는 소비'에 현혹되지 않고 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내 개인적 가치관에 맞는 소비습관은 아직까진 필요에 의존한다. 그래서 내 나이에 '맞는' 명품가방 소유는 현재 내 위시리스트엔 없다. 나는 스스로 필요를 알고 딱 맞는 물건을 고를 안목과 소양 정도는 갖추었다. 그래서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필요한 물건들을 알아서 잘 소비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그렇다.
옹색하게 '나이'를 들먹거리며
나의 고유한 본능적인 과시욕을 들쑤시는
잔혹한 사회에 꿀밤을 때려주자.
솔직히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이런 사회적 틀에 동요되어 과시를 위한 소비에 내 주체성을 분명 빼앗겼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획일화된 사고가 보편화된 보수적인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관이 우선 존중받기는 아직 어려우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인생은 디폴트(기본값)가 아니다. 사회가 현혹하는 기본 환경 설정 값에 내 인생 가치관을 끼워 넣으려 애쓰지 말자.
소비의 기준은 '나이'가 아닌 '나'이어야 하는 것이 올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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