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페미니스트 사설'만으로 읽을 수 있다. 기사의 연재 내용 대체로 페미니즘의 색채가 도드라지고, 특히 이 칼럼 속에서 예시를 든 고통받는 존재가 모두 여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그저 여성만이 아닌 보편적 인간의 속성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은 참 자학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인간 개인은 '나' 자신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그리고 "기꺼이" 동족의 고통 속에 변태적인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혐오하며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랜 과거에도 그래 왔고 지금도 매일 같이 느끼지 않는가.
사회에서 표현하는 인간성은 긍정적인 표면이 항상 도드라진다. 본능적인 인간의 속성일 수도, 혹은 '인간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자기 위로일 수도 있겠다. 그 얇은 표면 아래에 숨겨진 타인의 고통에 대한 결여된 민감성으로, 과연 사람은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인간적인' 통감하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
참 다행이게도 이 기사는 속히 우리가 생각하는 선한 인간의 이면을 드러낸다. 개개인의 인간성이 아닌 탈피할 수 없는생물체 인간만의 어두운 본성, 그 자체을 언급한다. 그리고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다는 것, 그 무지는 얼마든지 무한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나는 특히 이 참혹한 사실의 허용치를 어디쯤에 둘 것인가 에 대한 고찰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이해한 바로 의하면, "아름다운 예술로 포장된 타인의 고통 이 내가 느끼는 개인적인 공감, 연민, 분노, 희열 그리고 다른 감정들을 어떻게 타당하게 하는 것일까?", "그저 남루한 미적 탐닉만을 드러내는 꼴이 아닌가?" 하고 이 기사는 질문한다.
의사와 상관 없이, 매일, 나' 스스로 내면의 잔혹함과 무지를 마주한다. 기사를 보며 인간에 대한 분노가 인다. 그리고 분노하는 대상이 '나'를 포함한 '동족'이라는 것에 대한 혐오와 이질감을 떨치기도 참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순을 안고도 끊임없이 스스로 상기시켜야한다. 언제나 얼마든지 충분히 잔혹하고 변태적이며 무지할 수 있는 '나'를 항상 잘 경계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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