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작은 경제활동이라도 시작할 생각이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학교 연구 조교 자리를 가장 희망했는데. 학교는 학생에게 유동적인 환경일 뿐 더러 새로운 것을 배우는 좋은 곳이기도 해서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여타 할 만한 일자리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작년에 국제학교 데이케어 자리도 알아보기도 했는데, 장기화된 봉쇄조치로 출근은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되었다. 운수 좋게도, 몇 주전 학교 연구 조교 research assistant, WHK 자리가 생겼다. 일자리 구하기 더 어려운 코로나 시국을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오늘 사인한 계약서를 제출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였다.
쓰레기 통에서 빈병을 뒤적거리는 노숙자 아저씨를 봤다. (독일에 Pfand라는 빈병 회수제도로 생활을 이어나가는 노숙인들이 많다.) "혹시 잔돈이라도 줄 수 없겠니? 아님 먹을 꺼라도?"
나는 신속하고도 반사적인 반응으로 거부했다. 마스크에 가려진 옅은 웃음을 띄며, "아니요, 죄송해요" 하며 아저씨를 지나쳤다. 그 순간 움찔했다. '평소'처럼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 텐데, 길가에 있는 마켓에 들어가 빵 하나를 사서 나왔다. 마침 쓰레기통에서 돌아서는 아저씨가 다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빵 봉지를 들고 오는 나를 보며 아저씨가 손을 내밀었다. "Quarktasche(빵)이에요. 충분하겠어요?" "그럼, 정말 고마워, 좋은 하루 보내". 하고 아저씨는 방 봉지를 움켜쥐고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에, 울컥 했다.
아저씨에게 빵 하나에 생색낸 것 같아 부끄러웠다.
하필, 일자리 계약서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이 아이러니하고도 극적인 상황이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내 마음 편하자고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도움에서 오는 기쁨을 이용해서 '도덕성 우월감을 내가 즐기는 건가?' 하고 경계의 날이 섰다. 동시에, 도움을 청하는 이에게 무의식적으로 나온 반사 반응이 거절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언젠가부터 낯선 이를 돕는 일에 인색해져 버렸는지, 오랜 타지 생활에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악착같던 생활이 이제는 고벽이 되어 버린 거 같아 우울해졌다.
한편으론 나의 무의식을 다시 생각해볼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감사하다. 나의 반사적인 거절 반응을 수정할 용기와,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행동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있던 것이 감사했다. 살아보려고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던 이기적인 과거의 타지 정착 시절 (?)을 청산한 느낌이다. 사실 단단히 먹었다기 보단, 마음을 여유롭게 쓰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다시 한번 멀리 보낸다. 앞으로도 굴곡진 여러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오늘을 생각해야지, 제대로 반응해서 마음을 크고 넓게 쓰기로 하자.
민망하지만, 빵 하나에 사치스럽고 근사한 배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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