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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내공 쌓기/생각 & 성장

짐 싸다 보면 알게되는 민낯, 그 어리석음.

그동안 참 편하게 살았다. 한 해 여섯 번이나 거뜬히 이사하며 살아왔던 과거의 내가 새삼 대단하다. 그땐 어떻게 했지?

2년 만에 이삿짐을 싸려니 영 감이 안 잡힌다. '하루면 하겠지' 하고 주말을 내었다. 참, 어림 반푼 어치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한 사람 사는데 살림이 한 짐이다. 나 살겠다고 한 짐이 나오는 게 오묘하다. 참 많은 걸 끌어안고 산다. 한 사람의 생명부지 비용이 참 크다. 이 많은 짐들이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의식주를 제외하고도 달려오는 이 귀찮은 물건들이 필요부터 욕심까지 건방진 나의 생활들을 채워주었다. 스스로 잘난 맛에는 절대 생존할 수 없는 Heterotroph 종속 영양 생물의 삶의 민낯이 수치스러우면서도 감사하다.

안고 가는 짐엔 언제나 그에 버금가는 한 짐의 쓰레기도 나온다. 현명하게 잘 사고 싶어 나름대로 깐깐하고 몸부림치며 살아왔는데 욕심이 넘친다. 도대체 어디에 잘 숨겨져 있었는지 이 짐짝을 처분하면서도 나의 어리석음이 같잖고 못마땅하다. 설상가상으로 사이좋게 양 손가락에 훈장을 얻었다. 왼쪽은 칼에 베이고, 오른쪽은 박스에 베었다. 

 

 

나그네처럼 이리저리 옮겨 살아도 언제나 이삿짐은 한 짐이었다. 편안함이 과시와 소유 본능을 건드렸다. 안락함이 주는 빈 틈을 경솔한 욕심으로 채웠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현명함'이 스스로에게 부끄럽다. 분수에 맞게 산다며 발악하며 살았던 것 같은데......! 속상하면서도 다시 또 체념한다. '버리고 비워내면 아마 조금 더 성숙된 어리석음으로 다시 채우겠지?' 하고.


미래의 내가 조금 더 '근사한 우매함'으로 또 다른 편안함을 수고로이 꾸리며 한 마디 하는 게 벌써 들린다.  
'그만 생각해. 사는 게 다 그런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