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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드레스덴

드레스덴 자전거 타는 그 남자 & 자전거 타고 쫓아오는 볼드모트 꿈

지난 여름이 되어서야 드레스덴의 자전거 타는 남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분을 노이슈탓 (Neutstadt)과 중앙역 (Hauptbahnhof) 사이에서 딱 두 번 마주쳤었는데, 알고 보니 이 동네에 꽤 유명한(?) 분이시라고 한다. 두 번 마주친 그때마다, 그분은 자전거를 타고 계셨는데, 한 손엔 폐지를 한 아름 안고 계셨다. 그리고 항상 난 한국 여자 친구들과 만날 때 그분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분은 마주칠 때마다 우리를 따라왔다.

처음에 마주친 건 한 여름 대낮이었다.
약속 장소인 트램 정류장에서 학교 선배를 기다리는 내 옆에 왔다.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트램을 기다리면서까지,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이상했다.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건가? 하고 한번 쳐다봤었는데, 혼자 중얼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기분 나뿐 눈길에 기분이 싸해서 한번 더 쳐다보니, 아직 나를 쳐다보면서 웃는 표정이 서늘한게 기분이 나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를 만나서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배가 이 친구에 대해 알려줬다. 동네에서 꽤 '유명한' 친구라고.
동네 바보 + 미친ㄴ 느낌!

두 번째 마주친 건 엊그제 일이었다.
아는 동생과 산책을 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였다. 늦은 시간은 아닌, 저녁 오후 7시 반에서 8시 정도 해가 진시 간이었다. 프라하 거리 (Prager Straße)를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그분이 자전거를 타고 종이박스 다발을 들고, 동생 옆을 꽤 가까이 지나며 우리 얼굴을 스을쩍 보는 것이다.

잠깐 스쳐 지나가 본 얼굴이지만, 낯이 익은 이 얼굴을 난 기억하고 있었다.
이 동생은 이분에 대해 아직 모른다. 이 동생에게 이 분을 설명하며 나 혼자 조급한 걸음으로 뜀박질을 하며 그렇게 가던 길을 피했다. 자전거가 못 따라올 것 같은 좁은 골목길로 빠졌다.

그놈을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골목을 지나 트램이 지나가는 길을 건너, 큰 차도까지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리가! 따라오지마!

 

나는 그 공포에 질려서, 빨간 신호 등불을 무시하면서까지 횡단보도를 건넜다.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 없는 동생은 무단 횡단하는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 사이 그놈은 동생 옆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은 동생, 그리고 그놈뿐이었다.
(지나고 나서 동생이 말하길, 이때 가장 무서웠다고 했다.)

정말 다행이게도 신호가 바뀌기 직전, 어떤 행인 커플이 그 동생과, 자전거 그놈 사이에 섰다. 나는 그 동생과 사인을 주고받아서 신호가 바뀌면, 내가 다시 무단 횡단했던 길을 돌아오기로 했다.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고 그놈은 당연히 동생이 내 쪽으로 건너올꺼라 생각하며 따라오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횡단보도를 다시 걷는 것을 보자, 움찔! 했다. 옆에 신호를 기다리던 행인 커플로 인해 그놈은 눈치를 보며 횡단보도를 건넜고 우리는 그 사이 그놈의 시야에 눈에 띄지 않게 그 길로 중앙역까지 뛰었다. 

그리고 그놈이 따라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다행히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

이 일이 나도 모르게 트라우마가 되었나 보다, 그날 밤 나는 자전거 타는 볼드모트가 나를 쫓아오는 꿈으로 잠자리를 뒤척였다.

이 세상 어디에나 이런일이 있지만, 외국에 나와 이런 일을 한 번씩 겪고 나면 심장이 쫄깃해진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운에 맡기면서 나가야 하는 걸까. 정말 큰 대수로운 일이었다.